어떤 젊은이가 수도원에 입회하겠다고 찾아왔을때, 수도원의 나이든 수사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금화 세 닢이 있다면 그것을 기꺼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습니까?’ 그러자 청년은 확신에 차서 대답합니다, ‘그럼요, 마음으로부터 모두 주겠습니다.’ ‘그럼 은화 세 닢이 있다면 그것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것도 기쁜 마음으로 나누어 주겠습니다’ 수사가 또다시 질문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그럼 동전 세 닢이 있다면 어찌하겠습니까?’ 그러자 젊은이는 고민합니다. 수사가 다시 물었습니다, ‘젊은이여! 금화도 나누어 줄 수 있고, 은화도 나누어 줄 수 있다고 해 놓고, 동전은 어찌하여, 그렇게 주저하시나요?’ 그러자 청년이 말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동전 세 닢만큼은 안되겠습니다.’ ‘아니, 무엇이 문제입니까?’ 그러자 청년이 대답합니다, ‘현재 제가 가진 게 바로 그 동전 세 닢이기 때문입니다.’ 알고 있는 어떤 분은 주님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면서 종종 눈물을 흘립니다. 자신의 꿈은 선교사가 되어서 주의 일을 하는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분의 말은 정말 비장해 보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할 것처럼 보여집니다. 그리고 그 분안에 주님이 자리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 분은 주일을 밥먹듯이 빠집니다. 일주일 내내 술에 찌들어 살아갑니다. 교회에 나올때도 술 냄새가 풍풍 풍겨납니다. 하나님앞에 드리는 물질이 인색합니다. 그렇다면 그 분의 고백은, 단순한 바램일뿐입니다. 스스로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주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친다고 말하고, 심지어 생명까지 바칠 수 있다고 말한다해도, 동전을 포기하지 못한다면 은화를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은화를 포기하지 못하면 금화를 포기하는 일은 더욱 불가능한 일입니다. 오늘 성령님께서 말씀하시는데도, 여전히 내려 놓지 못하고 있는 나의 동전 세 닢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에게는 자존심이 동전 세 닢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물질이, 어떤 사람에게는 반복되는 죄의 습성이, 어떤 사람에게는 화난 감정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 내려 놓지 못하면, 계속 걸려 넘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신앙도 자랄 수 없습니다. 주님과 더 깊은 관계로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동전 세 닢을 포기하는 과감한 신앙의 진보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로인해 ‘주님이 나의 전부입니다’라는 고백을 삶으로 보여주는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빌3:7~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