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린 그 날 밤,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솔로몬은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3:9)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간구에 기뻐하셔서는, 그에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과 더불어서 부귀와 영광도 더하여 주셨습니다. 다스리는 자에게 중요한 요소는 “듣는 마음”입니다. 백성들로부터 들을 때 백성들의 필요를 알 수 있고, 백성들의 마음을 얻어서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듣기만한다면 소용없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원하는 것만 들으려 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듣되, 마음으로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대방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픔이 무엇인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마음을 열고 들을 때 온전히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간구한 “듣는 마음”이란 지혜로운 마음입니다. 지혜없이 듣는다면, 듣고자하는 선한 마음이 악한 이들에 의해서 이용당할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마음이 있었기에, 솔로몬은 서로 자기 아기라고 주장하던 여인들로부터 진짜 어머니를 구별해 낼 수 있었고, 그 일로인해 백성들로부터 더욱 존경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점점 더 혼란해지는 세상속에서 무엇보다 요청되는 것은 듣는 마음과 분별하는 지혜임을 깨닫게 됩니다. 사단은 뿔달고 오지 않고, “광명의 천사로 가장”(고후11:14) 해서 오기 때문입니다. 약자를 보호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공동체를 시작하신 때부터 제정하신 법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늘 사회적 약자에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법이 많이 만들어진 사회는 건강한 사회입니다. 그러나 약자를 보호해야한다는 명목속에 동성애가 슬그머니 타고 들어오는 형국이 오늘날 한국사회의 모습입니다. 주님은 베데스다연못에서 38년된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그에게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요5:14) 고 경고하셨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걸린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요8:11)고 분명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약자를 보호하고, 죄인까지 사랑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은 슬쩍 빼놓은 모양새입니다. 사사시대가 갈수록 혼란해진 이유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자기의 좋은 소견대로 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는 말씀앞에 서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말씀이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는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솔로몬처럼 간구해야 합니다. “듣는 마음을 더하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