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연결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의 대표적인
설교가이신 김동호 목사님과
페이스북 친구가 되어
있어 간혹 목사님의
글을 접하곤 합니다. 지난주에 올라온
한 글을 읽으며
한동안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되었습니다. 김
목사님은 이미 은퇴하신
분이신데, 얼마 전
예전에 섬기던 교회에서
설교하는 꿈을 꾸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원고를 들고 올라가지
않은 채 강단에
서게 되어, 앞이
캄캄해지고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꿈에서
깨어났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목사님도 제가
종종 꾸는 그
꿈을 꾸셨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큰
위로가 되었고,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번 주에는
목사님께서 약 35년
전 제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을 올리셨습니다. 아마
목사님 연세가 40대
전후의 모습인 것
같았습니다.
목사님은 그
시절이 그립다고 하시면서도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그립기는 한데,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그때도 좋았고, 지금도
난
좋다.”그 말을
읽고 깊이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아내와 함께
차를 타고 가면서
그 이야기를 나누었고, 자연스럽게 우리의 지난
날들을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목회했던 곳은
경상도 3대 오지중에서도
가장 오지인 ‘영양군’이었습니다. 하루에
버스 1~2번 , 신문배달, 우유배달은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외진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절을 돌이킬 때면, 늘 마음
뭉클해지고, 그리워지게 됩니다.
한국을
떠나 필리핀에서 미국을 준비하며
공부하던 시절! 막연한
미국 생활을 꿈꾸며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던
시간이었습니다. 저녁이 되어서야
아내를 만날 수
있었지만, 함께 학교
운동장을 걸으며 미래를
이야기하던 그 시간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미소가
지어집니다. 그 때
참 좋았습니다.
미국
켄터키 시절은 인생에서
가장 가난했던 때였습니다. 자그마한 것
하나 사는 것도
쉽게 생각할 수
없던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시절을
떠올리면 마음이 푸근해지고
여유가 느껴집니다. 그때도
좋았습니다.
부목사로 섬기던
시절에는 힘든 시간도
많았지만, 사랑으로 품어
주신 분들 덕분에
큰 위로와 격려를
받았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 역시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10년 전, 주님의 교회를
시작할 때는 아이들까지
포함해서 고작 열두
명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해지고
그리움이 밀려옵니다. 그
때도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10주년을
맞이한 지금! 비슷한
성품을 가진 분들이
함께 모여 욕심내지
않고, 서로를
격려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교회를 세워
가고 있는 이
시간 또한 너무나
감사하고 좋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그때는 좋았는데…”하지만
이 말 속에는
“지금은
좋지
않다”는 아쉬움이
담겨 있습니다. “그때도 좋았고”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매 순간을
감사함으로 누리며 살아가고
있음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우들
모두가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때도 좋았고, 지금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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