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릴 적만 해도 동네 길은 대부분 흙길이었습니다. 아스팔트가 귀하던 시절이라 밖에서 친구들과 한바탕 뛰어놀고 집에 들어오면 얼굴은 온통 흙먼지로 뒤덮여 꼬질꼬질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 더러워진 얼굴을 보고 나무라는 대신, 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아오셔서 정성스럽게 닦아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쁜 내 새끼!” 어머니 눈에는 더러워진 흙먼지보다 사랑스러운 자녀의 모습이 먼저 보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흙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흙은 본래 더럽고, 작은 충격에도 쉽게 깨지고 부서지는 연약한 재료입니다.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 찰흙으로 여러 가지 작품을 만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람도 만들고, 개도 만들고, 로봇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정성껏 만들어 놓아도 시간이 지나면 금세 말라 버리고, 작은 충격에도 갈라지고 부서지곤 했습니다.
우리 인생이 바로 그와 같은 존재입니다. 흙과 먼지처럼 연약하며, 작은 시련에도 쉽게 상처받고 부서지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흙으로 인생을 만드시고,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우리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창 1:31) 어머니가 자녀를 바라보며 기뻐하듯, 창조주 하나님께서도 우리 인생을 기뻐하셨습니다. 박상철이라는 가수가 부른 ‘무조건’이라는 노래 가사처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 사랑’이고 ‘특급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랑을 받은 존재임에도, 우리 인생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죄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그 결과 우리의 삶은 다시 죄의 흙먼지로 뒤덮여 더럽혀졌고, 세상이 온통 전쟁과 미움, 고통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인생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셨습니다. 더러워진 자녀의 얼굴을 어머니가 따뜻한 물로 씻어 주듯, 우리를 다시 깨끗하게 씻기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십자가는 바로 우리를 다시 “보시기에 심히 좋은 존재”로 회복하기 위해 위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가장 따뜻한 사랑의 손길입니다. 지금 우리는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순절은 단순히 예수님의 고난을 슬퍼만 하는 기간이 아닙니다. 흙먼지로 뒤덮인 자녀의 얼굴을 어머니가 물로 씻겨 주듯, 주님께서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는 그 사랑을 기억하는 시간입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죄악 가운데서 회복된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습 3:17)
이번 사순절,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내 씻기셔서 다시 “보시기에 심히 좋은 존재”로 회복케 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깊이 묵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 안에서 참된 평안과 안식을 누리는 한 주간 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