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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글

제목절제와 겸손함으로2025-09-11 00:16
작성자 Level 10

‘문 닫아야해요. 빨리 들어가지 않으면 2층으로 가야하니 빨리 빨리!’

안내원의 재촉에 뛰어서 제자리에 앉자마자 뮤지컬 ‘요나’의 막이 올려졌고,

2017년 주님의 교회 1박 2일 수양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성경에 기초해서 세부적인 부분까지 잘 묘사하였고,

웅장한 스케일과 배우들의 노래, 다양한 백그라운드들이 잘 어우러져서 은혜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다음날은 아미쉬 마을과 수 많은 잼을 공짜로 시식할 수 있는 Kitchen Kettle Village를 방문하였습니다.

네델란드 후손들인 아미쉬는 16세기 유럽에서 개신교에 대한 박해가 시작될 무렵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미국으로 건너온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 유아세례 부인, 신앙고백 할 수 있는 성인이 되었을 때

세례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실행하였기에 ‘재세례파’라고 불려졌습니다.

 

아미쉬 마을로 향하는 동안, 마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었고, 도로에 말똥들이 군데군데 떨어져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차를 타고 그들 옆을 ‘쌩’하고 지나면서,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이 왜 저렇게 불편하게 살아갈까?’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들은 차 대신 말이나 마차를 이용하고, 전기 대신에 촛불을 사용하고,

각종 전기제품인 전화, TV, 냉장고, 세탁기도 사용하지 않고, 주로 농업에 종사하지만 농기계도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의 마을에는 손빨래를 해서 널려져 있는 빨래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화려한 옷색상이나 악세사리를 피하고 먹는것도 절제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검소하고 금욕적인 생활을 통해서 겸손을 유지하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아미쉬들이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전적으로 신앙때문입니다.

그들은 현대문명을 거부하는것이 아니라, 문명의 유익과 욕구들을 절제하는 것입니다.

문명이 주는 욕구들을 따르다보면 세속적으로 빠질 수 있기에, 자발적 선택에 의해 절제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삶의 원칙은 성경이며 신앙과 삶의 일치를 위해서 힘쓰는 사람들입니다.

21세기속에서 그들은 18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셈입니다.

 

오늘날 속도(speed)는 경쟁력입니다. 편안함은 모든 이들이 추구하는 삶이라 말해도 과언은 아닌듯 합니다.

그들의 삶을 보면서, 우리들이 추구하는 빠름과 편안함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현대문명안에는 온통 개개인의 편안함과 유익만이 존재해 있으며, 그 안에 공동체와 하나님이 빠져 있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선택의 기준이 공동체고, 신앙이고, 하나님일 수 있다면!

그들처럼 삶의 영역에서 개개인이 좀 불편하고, 손해본다해도,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그것을 기쁨으로 감내하며 즐거워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내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내가 편안하고, 즐거우면 모든 것이 ‘OK’라는 생각을 벗어 던지고,

조금 더 신앙과 삶의 일치를 위해서 절제하며, 겸손함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소망해 봅니다.

나눔의 글

제목절제와 겸손함으로2025-09-11 00:16
작성자 Level 10

‘문 닫아야해요. 빨리 들어가지 않으면 2층으로 가야하니 빨리 빨리!’

안내원의 재촉에 뛰어서 제자리에 앉자마자 뮤지컬 ‘요나’의 막이 올려졌고,

2017년 주님의 교회 1박 2일 수양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성경에 기초해서 세부적인 부분까지 잘 묘사하였고,

웅장한 스케일과 배우들의 노래, 다양한 백그라운드들이 잘 어우러져서 은혜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다음날은 아미쉬 마을과 수 많은 잼을 공짜로 시식할 수 있는 Kitchen Kettle Village를 방문하였습니다.

네델란드 후손들인 아미쉬는 16세기 유럽에서 개신교에 대한 박해가 시작될 무렵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미국으로 건너온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 유아세례 부인, 신앙고백 할 수 있는 성인이 되었을 때

세례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실행하였기에 ‘재세례파’라고 불려졌습니다.

 

아미쉬 마을로 향하는 동안, 마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었고, 도로에 말똥들이 군데군데 떨어져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차를 타고 그들 옆을 ‘쌩’하고 지나면서,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이 왜 저렇게 불편하게 살아갈까?’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들은 차 대신 말이나 마차를 이용하고, 전기 대신에 촛불을 사용하고,

각종 전기제품인 전화, TV, 냉장고, 세탁기도 사용하지 않고, 주로 농업에 종사하지만 농기계도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의 마을에는 손빨래를 해서 널려져 있는 빨래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화려한 옷색상이나 악세사리를 피하고 먹는것도 절제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검소하고 금욕적인 생활을 통해서 겸손을 유지하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아미쉬들이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전적으로 신앙때문입니다.

그들은 현대문명을 거부하는것이 아니라, 문명의 유익과 욕구들을 절제하는 것입니다.

문명이 주는 욕구들을 따르다보면 세속적으로 빠질 수 있기에, 자발적 선택에 의해 절제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삶의 원칙은 성경이며 신앙과 삶의 일치를 위해서 힘쓰는 사람들입니다.

21세기속에서 그들은 18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셈입니다.

 

오늘날 속도(speed)는 경쟁력입니다. 편안함은 모든 이들이 추구하는 삶이라 말해도 과언은 아닌듯 합니다.

그들의 삶을 보면서, 우리들이 추구하는 빠름과 편안함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현대문명안에는 온통 개개인의 편안함과 유익만이 존재해 있으며, 그 안에 공동체와 하나님이 빠져 있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선택의 기준이 공동체고, 신앙이고, 하나님일 수 있다면!

그들처럼 삶의 영역에서 개개인이 좀 불편하고, 손해본다해도,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그것을 기쁨으로 감내하며 즐거워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내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내가 편안하고, 즐거우면 모든 것이 ‘OK’라는 생각을 벗어 던지고,

조금 더 신앙과 삶의 일치를 위해서 절제하며, 겸손함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