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고, 본받고 싶고, 사랑하는 분. 제 마음속에 늘 코스모스처럼 가냘프지만, 한결같이 강한 신앙의 거인이셨던 한 분을 지난 주간에 떠나 보냈습니다. 그 분과의 마지막 만남은 마트 앞이었습니다. 아내가 물건을 사러 마트로 들어가서 차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 유리창을 ‘톡톡’하며 두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고개를 들고 보았더니, 떨어져 있어도 늘 그립고, 소식이 궁금했던 분이었습니다. 장을 보다가 아내를 만나서 이야기 한 후에, 차 안에 있는 저를 일부러 찾아오신 것입니다. 반가움에 두서없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헤어졌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에게 ‘그 분은 만나면 행복해지는 분이다’라고 이야기했더니, 아내도 ‘나도 그런데’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그 분은 처음 만났을때부터 지금까지 한결 같은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결같이 밝은 모습을 하시고, 늘 겸손하시고, 온유한 모습을 보이시기에 더욱 그런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의 상황은 전혀 그럴만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암으로 투병생활을 하셨고, 시간이 갈수록 야위워 가셨습니다. 1년에 1~2달은 치료 때문에 아무 음식도 드시지 못하고 물만 먹어야 했습니다. 더더구나 투병의 이유가 의사의 과실로 되어진 것이니, 정말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그러나 그 분은 한 번도 아파다거나, 힘들다는 표정이나, 억울하는 말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몸은 더욱 연약해 갔습니다. 그러나 얼굴의 빛은 더욱 밝아지고, 더욱 기쁨이 넘쳐났고, 에너지가 넘쳐 보였습니다. 오랜 질병속에서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남에게 알아 달라고 말하고 싶고, 투정하거나 불평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분에게서 한 번도 그런 내색을 보지 못했습니다. 주님의 교회를 개척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선뜻 거액의 헌금을 보내 주셨습니다. 한 번은 그런 고백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하나님께서 나의 생명을 이렇게 연장하고 계신데에는 분명 그 이유가 있을텐데 그것을 찾고 싶어요.’그것이 이유였습니다. 그 분은 약함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려고 애씀으로 하나님안에 거해 있었습니다. 그로인해 기쁨과 평안함과 에너지가 그 안에 늘 충만했고, 다른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분은 방금 만났는데 또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었습니다. 함께하면 기쁘고 즐거운 사람이었고, 떨어져 있을 때는 그립고, 신앙뿐 아니라 삶까지 본받고 싶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분은 놀랍게도 목회자가 아니라 평신도였습니다. ‘권사님은 만나면 너무 반갑고 기분 좋아지게 하는 분입니다’말씀드리고 싶었는데, 끝내 못하고 떠나 보냈습니다. 천국에서 다시 만날을 때 할 말을 남겨 둔 셈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만나면 너무 반갑고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