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후배 목사님이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방법은 기도한 후에 먼저 선포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을 믿고 선교사가 되기로 했습니다’ ‘유학하기로 했습니다’ ‘이사하기로 했습니다.’ 그럴때마다, 저는 ‘좀 더 신중하게 기도하고 응답받고, 결정하라’고 조언했습니다. 무모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후배 목사님이 선포한데로 그 길을 열어주시는 것을 옆에서 늘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반면 저는 먼저 기도하고, 응답받고, 철저하게 계획한 후에, 일을 시작하는 편입니다. 후배 목사님과 저와 비슷한 유형의 성경 인물이 에스라와 느헤미야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에스라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3차에 걸쳐서 포로귀환할 때, 2차 귀환을 주도했던 지도자입니다. 예루살렘 귀환길에는 강도를 비롯한 여러 위험요소들이 있었기에, 험난한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에스라는 왕에게 어떠한 군사적 지원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보병과 마병을 구하는 것을 믿음없는 행동이라 생각하고 부끄러워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금식기도 한 후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온전히 신뢰하며, 귀환길에 올랐던 것입니다. (스8:21~23) 반면 3차 포로귀환을 주도했던 느헤미야는 정반대의 인물입니다. 그는 기도한 후에는 모든 것을 철저하게 준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조국 예루살렘의 성문이 불타고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왕앞에 나아가기 전에 기도로 준비하였습니다. 왕앞에서 어떠한 말을 해야 할지도 준비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동안 통과해야 할 지역의 총독들에게 통과할 수 있도록 조서를 써 달라고 왕에게 요청했고, 길에서 만날 수 있는 여러 위험요소들을 위해서 군대 장관과 마병을 함께 보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느2:1~9) 그럼 에스라는 믿음이 더 좋고, 느헤미야는 부족해서 그렇게 행동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성경은 둘 중 누구의 믿음이 더 좋다거나, 바른 신앙의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둘 다 온전한 믿음으로 행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일하는 방법의 문제 혹은 성격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경은 사람들의 성격을 고려하지 않고, ‘이것이 믿음이다’ 이렇게 해야한다’ 정의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믿음이 온전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나름대로 신앙생활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방법이 옳고, 다른 사람들의 방법은 틀리다하거나, 저평가합니다. 나와 다름은 틀림이 아니라, 다름입니다.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다양성속에서 하나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원하십니다. 성숙한 공동체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합니다. 서로를 통해 배워 나갑니다. 우리가 바로 그런 성숙한 공동체원으로 빚어져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