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택으로 이사한 지, 한 달이 조금 지났습니다. 짐 정리가 거의 끝나고 나니, 또다시 해결해야 할 일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잔디밭입니다. 오랫동안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서 많이 상해 있었습니다. 물을 주고, 거름도 주고, 죽은 풀과 지저분한 것들을 긁어냈습니다. 그랬더니 조금씩 푸른 잔디가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우리 집 잔디가 다른 집보다 유난히 빨리 자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잔디를 길게 깍아서 그렇게 된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이유가 따로 있었습니다. 길게 자란 것은 잔디가 아니라 잡초였습니다. 잡초가 잔디보다 훨씬 빠르게 자라 잔디 위로 쑥쑥 올라오고 있었고, 정작 잔디는 그 아래에서 천천히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다가 오래전 첫 목회지에서 있었던 한 일이 떠올랐습니다. 처음 목회했던 교회에는 제법 넓은 꽃밭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꽃밭의 풀을 뽑겠다고 열심히 작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를 바라보던 할머니 집사님들이 웃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열심히 꽃은 뽑아 버리고, 풀은 남겨 놓았던 것입니다. 어린 잡초중 이쁜 꽃을 피우는 것이 있었는데, 저는 그것이 꽃인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때는 단순히 “내가 참 무지했구나” 하고 웃어 넘겼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잔디밭을 바라보면서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잡초는 참 빨리 자라는구나!” 잔디를 살리려고 물도 주고 거름도 주었는데, 정작 더 빨리 자라는 것은 잡초였습니다.
우리의 삶속에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종종 일어나곤 합니다. 좋은 것은 의외로 천천히 자랍니다. 믿음도, 인격도, 사랑도, 신뢰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 물을 주고 기다려야 조금씩 뿌리를 내리고 자라납니다.
반면 어떤 것들은 참 빨리 자랍니다. 미움도 그렇고, 오해도 그렇고, 욕심도 그렇습니다. 조금만 내버려 두면 어느새 이러한 것들이 나의 마음을 뒤덮어 버립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가라지의 비유처럼, 밭에는 곡식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 납니다. 그리고 가라지가 더 크고 왕성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빨리 자란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자라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자라나고 있느냐? 것입니다.
조금 느려도 괜찮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디게 자라는 것처럼 보여도 괜찮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주신 자리에서 생명수를 받아 마시고, 은혜 안에 뿌리 내리며, 좋은 곡식으로 자라가면 됩니다. 빨리 자라는 삶보다, 바르게 자라는 삶. 사택의 잔디밭을 바라보며 오늘 제 마음에 남은 작은 깨달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