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을 처음 시작한 곳이 캔터키였습니다. 넓은 초원이 많고 말로 유명한 지역입니다. 처음 미국 생활을 캔터키에서 하면서 가장 놀란 것중하나는 차가 ‘빵빵’거리는 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경적을 울려야 할 것 같은 상황속에서도 조용히 기다려주는 캔터키인들을 보면서 ‘저럴 경우 한국이라면 클락션을 여기저기서 울려대서 굉장히 시끄러울텐데’라고 늘 생각했었습니다. 한국은 신호가 바뀌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클락션을 울려대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과 이야기 할 때면 ‘미국은 거리에서 클락션소리를 거의 들어보지 못할 정도야’라고 말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곳 뉴욕으로 와서는 캔터키에서 놀란만큼 또 다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뉴욕은 캔터키와는 정반대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운전을 하는 도중에 클락션을 눌러대는 사람들에 의해서 깜짝깜짝 놀랄때가 적지 않습니다. ‘무엇때문에 나에게 클락션을 눌렀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을때가 많이 있을 정도입니다. ‘미국은 거리에서 클락션소리를 거의 들어보지 못할 정도야’ 라고 한 말은 사실은 wrong (잘못) 이고, 정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캔터키가 그렇지, 미국 전체가 그런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난 여름에 만 7년만에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처럼, 한국은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변한 것은 시민의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차를 운전하면서 당연히 여기저기에서 울려대는 클락션 소리를 예상했는데, 한국에 머무는 동안 한 두번 클락션소리를 들었을 뿐 거의 듣지 못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신호등이 바뀌어서 교차로 안에 차들이 몰려 있는 상황인데도 신호가 다 바뀔때까지, 누구 하나 ‘빵빵’거리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시민의식이 그마만큼 상승한 것입니다. 그러니 ‘한국은 여기저기서 빵빵 거리는 소리가 심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이미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인 것입니다. 이곳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한인들을 보면, 자신이 한국을 떠나온 그 시점에서 한국에 대한 기억이 정지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때의 한국을 기억하며 그것이 전부인양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가 자신이 기억하고, 경험한 것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시대도 발전하고, 시민의식도 발전했지만 그것에 발맞추어 인식이 진화되지 못한 것입니다. 사회와 시대에 발맞추지 못하고, 여전히 예전기억과 예전사고방식만 가지고 있다면 뒤처질수 밖에 없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새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는 날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새 시대는 새 부대를 요청하기 때문입니다. 유행을 따라 가는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새 시대안에서 이루기 원하시는 것들을 바라보며, 지혜와 부지런함으로 그 일을 힘써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성령의 지혜를 간구하며, 모든 일에 겸손히 배우려는 자세로 사물을 바라보며, 시대를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