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아는 젊은 필리핀 교수님 한 분이 계십니다. 구약을 가르치는 분인데 실력이 아주 뛰어나고 인물도 좋아서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이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그 교수님은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는데 윗니 하나가 길게 아랫니가 있는곳까지 뻗어 내려 와 있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단순히 보기 흉하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이유를 듣고는 깜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아랫니 하나가 빠졌는데 임플란트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해서 그대로 방치해 두었는데, 윗니가 아래니가 위치한 곳까지 계속 길게 뻗어 내려 온 것입니다. 아랫니와 윗니가 밥을 먹거나, 입을 다물거나 할 때 서로 부딪히면서 각 각의 이가 더 자라지 못하게 함으로써 각 각의 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게 해 주는데 반해서 부딪혀서 막아 줄 이가 없으니 그렇게까지 흉하게 밑으로 자라난 것입니다. 그 설명을 듣고는 삶 속에서 ‘장애물과 같은 것들이 있음도 축복이구나!’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편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나를 무조건 지지해주며, 내가 하고 싶어하는데로 따라 주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무조건 나에게 편한 사람은 오히려 나를 망칠 수 있습니다. 그 사람과의 관계가 편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내 속에 긴장이 사라져서 내 마음대로, 내 기질대로 행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나를 막아서고 힘들게 하는 사람과의 만남은 피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 또한 축복임을 깨닫게 됩니다. 막아서고 반대하는 사람으로 인해서 그 순간은 힘들고 어려울수는 있겠지만, 그 것때문에 한 번 더 생각하고, 더 인내하게 되고, 한 번 더 나를 점검하게 된다면 분명 우리에게 커다란 유익이 되며, 나를 성장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삶속에서 나를 약간 긴장하게 만드는 것들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임을 깨닫게 됩니다. 긴장이 있다는 말은 생명력이 있다는 말이며, 긴장으로 인해 더욱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인의 삶을 돌이켜 볼 때 삶의 중요한 가치를 배운 것들은 형통할 때 보다는 장애물과 같이 막힘을 통해서입니다. 삶의 턴닝 포인트도 막힘을 통해서 있었으며, 다른 사람의 아픔에 함께 아파할 수 있고 배려할 수 있는 마음도 본인이 막힘을 통해서 그 아픔을 경험해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나를 반대하며, 막아서는 것들이 무엇이 있나를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그것들에 대해서 기꺼이 감사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하나님앞에서 생명력있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도록 나를 훈련하는 훈련의 도구이기에 막힘 또한 축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